
베이스 주자. John Patitucci
이 사람이 맨 처음 어디서 어느 팀에서부터 음악 활동을 정식으로 시작했는지는 자세히 조사까지는 해보지 않았지만, ㅎㅎ 일단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칙코리아 밴드에서다. 칙코리아는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사실 웬만한 분들은 다 알고 계실 거고...
칙코리아는 자신의 밴드 멤버를 활동 성격에 따라(일렉트릭밴드, 어쿠스틱밴드, 등등...) 교체하면서 많은 뮤지션들을 발굴해냈는데 그 중 하나인 - 칙코리아 & 일렉트릭 밴드 - 에서 멋진 활약을 해준 베이시스트 John Patitucci. 비슷한 이름의 록기타리스트와 John Patrucci 와 헷갈리지 마시길...
이사람은 베이스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 있어서도 매우 매력적인 결과를 보인다.
테크닉 또한 매우 훌륭하지만, 테크닉션 쪽을 지향한다기보다는 음악 완성도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뮤지션으로 생각되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그는 어쿠스틱 베이스(콘트라 베이스, 혹은 업라이트 베이스라고도 함)도 잘 다루고, 일렉트릭 베이스도 잘 다루는데, 일렉트릭은 6현 베이스를 주로 다룬다. 비쥬얼은 마치 이탈리아 마피아처럼 좀 세게 생겼는데, 한 미남 한다. 여러모로 매력있는 인물이다.

6현 베이스와 John Patitucci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면 대중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겠지만, 만일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여유 있게 감상할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면 그땐 추천해본다. 아 그전에 시간이 된다면, 칙코리아와 일렉트릭밴드를 먼저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그가 멤버로 참여했는지 앨범 자켓을 꼭 확인해보면 좋겠다. 일렉트릭밴드에는 다른 베이시스트도 멤버로 활약했으니 말이다.
그의 솔로 앨범들을 들어보면, 앨범마다 각각 매우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는데, 라틴 쪽의 음악, 퓨전재즈 느낌의 앨범, 그리고 비밥 재즈 쪽 등등 꽤나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으며 결과 그리고, 평가 또한 매우 높다.
오늘따라 유난히 귀에 맴도는 앨범이 있는데, 오케스트레이션과 베이스의 앙상블, 일종의 클래식 재즈 느낌의 앨범이다. 전체적으로 곡들의 흐름이나 편곡이 매우 아름답다. 이 앨범의 제목은 "Heart of the Bass" 여기서 그는 바흐 곡을 무반주로 연주하기도 한다.
"Bach Prelude in G Major (from the Cello Suite)"
보러가기 => http://www.youtube.com/watch?v=wsQdxQwGr2w
몇 가지 더.
http://www.youtube.com/watch?v=Gu1tI2Y9l_c
http://www.youtube.com/watch?v=2iKRT4XnPwg
요즘은 그의 솔로 앨범에 대한 별다른 소식을 못 들었는데. 혹은 내가 게을러서 그럴지도 모르겠고..
여튼, 나의 전공은 기타지만서도 그의 솔로 앨범은 거의 다 모으고 있는 편이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건, 저 위의 자켓모음 사진을 보면, 그의 여러 앨범이 보인다. 그중 맨 왼쪽 앨범.
만일, 예전에 한 번 소개한 베이시스트 'Jaco'를 기억한다면 그를 추모하는 앨범 또한 기억할 텐데, 저위의 맨 왼쪽의 은색 자켓이 바로 그 앨범이다. John Patitucci 역시 저 앨범에 참여하고 있다.
그에 대한 정보는 이쯤이고...
======= 재즈 감상에 대하여 =======
사실 재즈 음악의 장르란 그 폭이 너무도 넓고, 또 종류도 매우 광범위해서 그 전체의 디렉토리를 하나하나 글로서 일일이 나열하며 풀어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그 정보 선택 폭은 매우 제한적이기도 하다. 물론, 뭣보다도 재즈 메니아의 수요가 적은 이유가 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제대로 된(전문교육을 받았거나, 족보있는 약력을 가지고 있는)재즈 평론가나 컬럼니스트가 아직은 이 나라에 많지 않다는 게 더욱 중요한 이유라 볼 수도 있다. 또한, 재즈 클럽이나 공연장의 수도 매우 적고, 재즈 스테이션 역시 매우 부족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즈에 대한 이미지가 잘못 전달, 즉 왜곡된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본다. 재즈 하면, 문득 가지게 되는 어떤 이미지, 그리고 관념 따위가 우리 저변에 꽤나 비일비재하다. 혹자는 재즈에 대해 부르조아의 음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서 그런 자신의 시각을 글로 정리해 책으로 내놓은 사람도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게다가 재즈 하면 무언가 밑도 끝도 없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거나 상당히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이미지, 그리고 혹은, 왠지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의식수준이나 지적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듣는, 뭐 그런 인식이 우리 주위에 깔려있기도 하다. 물론 재즈가 아주 말초적이고 단순한 음악은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평가나 인식은, 사실은 재즈가 얼마나 청빈한 예술가의 음악인지 그리고 얼마나 인간본질에 가까운 음악인지 대부분 잘 모르는 소리이기도 하다. 돈벌이가 되는 상업적인 음악을 포기하고 주위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불구 하며, 돈도 안 되는 스케일 연습이나 화성 공부에 온 정신과 몸을 투자하여 전진, 전진을 하고 있는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음악이 부르조아나 특별한 사람들만이 듣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답이 쉽게 나올 수 있다. 알고 보면 재즈란 그런 음악이다.
또 다른 재즈의 이미지도 있다.
재즈 하면 짙은 담배연기에 우울하고 어두운 클럽에서 무드있게 처절한 사운드를 내는... 이하생략.
뭐 이런 약간은 환상적인 이미지가 재즈 이미지의 전체를 지배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그렇게 재즈라는 이미지를 제한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초기 재즈의 모습을 우리는 자주 기억해낸다. 하지만, 사실 재즈는 많이 변화해왔다. 아니 많이 성장했다. 물론, 원초적인 상태의 것을 보존하는, 역사적 가치의 재즈도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변천 유무하는 이 커다란 음악이란 영역에서 조금씩 점점 더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그런 재즈의 가치 또한 우리에게 소중하다.
재즈는 이제 더 이상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니다. 또 미국만의 음악도 아니다. 이제는 재즈 수용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정서와 특징을 수용하며 갖추고 있고, 그것이 융합된 음악양식을 재즈 속에 내포하려 한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영화 속 장면처럼 마냥 우울한 음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유가 좀 되는 사람들이 비싼 와인이나 양주를 갖추고선 들어야만 반드시 폼이 나는 그런 음악도 아니다.
재즈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든 없던 재즈는 인간의 심장과 등골을 자극한다. 그 누구에게건 간에 말이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어 밥을 굶고 잠도 거리에서 자는 노숙자라고 한다 해도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선택하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이다. 만일 지하철에서 수십 년 동안 재즈가 간간이 흘러나왔다면 노숙자들 혹은 승객들도 본의 아니게 재즈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걸 한번 상상해보자. 그 하나의 예로 예전에 어디선가 일본의 모 환경미화원의 세상사는 얘기를 글로 읽은 적이 있다. 취미는 음악이고 또 재즈 색소폰 주자인 존 콜트레인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기억난다. 물론 재즈관련 인터뷰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그런 사실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인터뷰를 같이 보던 내 주위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좀 배운 사람인가? 요즘 대학 나와도 직업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지..."
... ...
배운 사람이라...
그렇다면 재즈를 듣고 싶은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하거나 대학 정도는 나와야 한다는 뜻?..
정말이지 이런 생각 없고 경솔하고 속물적인 반응은 언제쯤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질 것인가...
한편, 루이 암스트롱, 찰리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사라 본, 빌리 할리데이, 혹은 쳇 베이커 부터 현대의 죠지밴슨, 포플레이, 펫 메스니 등 세상에 꽤나 알려져서 속된말로 우리가 이름이라도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그런 재즈 뮤지션들을 이 순간 문득 떠올려 본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말고도 그들 사이 사이에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꽤 알려지고 존경받는 그런 뮤지션들이 참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런 많은 훌륭한 뮤지션이 존재한들 우리는 대체 알아낼 방법이 없다.
어쨌든, 그들 중 하나를 소개한다면 물론 John Patitucci 이 사람도 포함되겠다.
물론 이 사람도 재즈 메니아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들 중에 속한다. 하지만, 역시 그래봤자다. 그의 노력에 비해 결과에 비해 그는 아직도 어딘가 가려진 그늘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다.
사실 나는 컬럼을 쓸 만큼 재즈의 역사나 정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기에, 더 자세한 에피소드나,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일단 이런 뮤지션도 있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라도 알리고 싶은 게 목적이기도 하니, 것도 괜찮은 짓이라 생각해본다.
사실, 음악에 대한, 그리고 뮤지션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각각의 개인들의 것이지만, 릿스너가 무슨 검색왕도 아니고, 세상 모든 뮤지션을 다 자기 힘으로 검색하거나 발품을 팔아서 온 레코드점을 다 뒤지고 다니며 찾아내어 일일이 들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너무한 처사겠다. 오히려, 생각지도 않았는데 접할 기회가 생기게 되거나, 주변에서 자주 흔히 재즈 음악을 들어볼 기회가 많아진다면 과연 그렇게 재즈가 낯설기만 할까 싶기도 하다. 사실 재즈는 미국에서 보면 그냥 흘러간 옛 음악이다. 그것이 뿌리가 되어 많은 장르로 퍼져 나갔고 발전해서 오늘날의 재즈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락, 재즈, 컨트리, 등등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트롯 같은 그런 한 시대의 음악이다. 물론 양식도 다르고 질도 다르고, 또 발전과정 또한 엄연히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재즈라는 것이 무슨 외계에서 떨어진 음악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재즈뿐이 아니고 어떤 장르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락도 그렇고, 클래식도 모든 음악이 다 그렇다.
어쨌든 모든 뮤지션은 음악으로 말한다. 그 뮤지션이 어떤 사람인지도 때론 중요할지는 모르겠고, 그 뮤지션이 때론 남의 곡을 카피해서 사기를 칠 수도 있고 술 처먹은 후에 싸워서 폭행죄로 잡혀갔는지 이혼을 했는지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뮤지션의 연주나 목소리, 즉 뮤지션이 뽑아내는 그 사운드 자체는 절대 대중을 속일 수 없다. 그렇기에 백날 메스컴이나 평론가의 해설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더라도 일단 직접 그의 음악을 먼저 음미해보는 것이 내 생각에는 뮤지션을 접하는 최고의 길이다. 그다음이 주석(해설)이면 좋겠다.
가끔 지인들과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다 보면, '나는 그 음악을 이해 못하겠다. 혹은, 이해하겠다." 라는 표현도 접하게 되지만, 사실, 이 이해한다. 라는 표현이라는 좀 그렇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표현이다. 전문가도 이론적으로 분석 할 뿐이지 사실 타인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학구적으로 다가서거나, 혹은 자신만의 감성으로서 어느정도 가능한 만큼이라도 이해하려 한다면 그땐 그 원작자의 조언과 사족은 필수다. 거기엔 공감이나 교감이 있을 뿐이지, 이해라는 것은 없을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게다가 릿스너들, 대중들이 매번 음악을 들을 때마다 씨리우스 하게 분석까지 하며 듣는다는 것은 시간낭비 아닌가. 그런 어리석은 짓은 재즈를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사람들도 절대로 원치 않을 테다. 그저 무조건 듣기 시작하다가 맘에 들면 그냥 계속 듣거나 혹은 꺼버리면 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무언의, 무론의 감성으로 호불을 가리면 되는 거다. 내가 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뭐 이런 생각은 앞에서 말한 데로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혹이라도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의 어떤 선입관이 먼저 생긴다면 그건 반드시 버리면 좋겠다. 자기 자신의 정신적 건강과 영혼의 질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재즈란 나와 상관없는 무언가 어딘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듣는 거? 혹은 이해도 못하면서 괜히 잘난 체 하려고 듣는 음악? 뭐, 이런 선입견은 당장에 내다 버리자.
음악감상. 거기엔 오직 그 순간만이 존재하고, 그 순간 그것이 싫고 좋고 만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다른 것이 또 거기에 존재한다면, 그건 모두 허상, 관념, 혹은 개인적 가치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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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08:15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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